애국부인전(愛國夫人傳)
저자 : 장지연
애국부인전 _ 제1화
오백여 년 전에 구라파주 법란서국 아리안 성 지방에 한 마을이 있으니 이름은 동이미라. 그 땅이 궁벽하여 인가가 드물고 농사만 힘쓰는 집뿐이라. 그 중에 한 농부가 있으니 다만 부처 두 식구가 일간 초옥에 있어 가세가 빈한하므로 양을 쳐서 생업하더니 서력 일천사백십이 년 정월에 마침 한 딸을 낳으니 용모가 단아하고 천성이 총명하여 영민함이 비할 데 없으니 부모가 사랑하여 이름을 약안아이격이라 하더니 약안이 점점 자라매 부모에게 효순하며 한번 가르치면 모르는 것이 없으며 또한 상제를 믿어 성경을 항상 읽으며 학문에 능통한지라. 나이 십삼 세에 이르러 능히 부모의 양치는 생업을 도우니 부모가 이 여아의 극히 영리함을 보고 십분 기뻐하더라. 그 동네 사람들이 약안의 총민함을 칭찬 아니 할 이 없어 특별히 이름을 정덕이라 부르며 가로되,
“아깝도다. 정덕이 만약 남자로 생겼다면 반드시 나라를 위하여 큰 사업을 이룰 것이거늘 불행히 여자가 되었다.”
하매 약안이 이렇듯이 칭찬함을 듣고 마음에 불평이 여겨 하는 말이
“어찌 남자만 나라를 위하여 사업하고 여자는 능히 나라를 위하여 사업하지 못할까? 하늘이 남녀를 내시매 이목구비와 사지 백태는 다 일반이니 남녀가 평등이거늘 어찌 이같이 등분이 다를진대 여자는 무엇 하려 내시리오.”
하니 이런 말로만 보아도 약안이 타일에 능히 법국을 회복하고 이름이 천추 역사상에 혁혁히 빛날 여장부가 아닐쏜가.
각설. 약안이 하루는 일기가 몹시 더워 불 속 같은지라 양을 먹이다가 더위를 피하려고 양을 몰고 나무 수풀과 시냇물 가에 배회하더니 이 때 마침 영국 군병이 법국을 침범하여 향촌으로 다니면서 불을 놓아 인민을 겁략하고 재물을 탈취하거늘 약안이 속히 피하여 수풀 사이로 들어가니 인적이 고요하고 다만 옛 절이 있거늘 그 절 가운데 숨어서 상제께 가만히 빌어 가로되,
‘원컨대 신력을 빌어 나라의 환란을 구원하고 적국의 원수를 갚게 하옵소서.’
하며 무수히 축원하더니 이 때 영국 군병은 벌써 가고 촌려가 안정하거늘 약안이 그 절로 나와 길을 찾더니 그 절 뒤에 한 화원이 있는데 화류는 꽃다움을 다투고, 꾀꼬리는 풍경을 희롱하는지라. 약안이 경개를 사랑하여 화원중에 들어가 이리 저리 구경하더니 홀연 어디서 약안을 불러 가로되,
“약안아, 네가 너무 한 흥을 타 방탕히 놀지 마라.”
하거늘 약안이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았으나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지라. 정히 의심하여 머리를 들어 보니 홀연 공중에 황금빛이 찬란하며 채색 기운이 영롱한데 구름 속에 무수한 천신이 공중에 둘러서고 그 중에 세 분 천신이 서서 옥관 홍포로 기상이 엄숙한데 약안을 크게 불러 가로되,
“법국에 장차 큰 난이 있을지라. 네가 마땅히 구원하라.”
약안이 다시 천신의 앞에 엎드려 고하되,
“소녀는 본래 촌가 여자라. 어찌 하여야 군사를 얻어 전장에 나아가게 되오며 또한 법국의 난이 어느 날 평정하오리까? 소녀의 지원이 백성을 위하여 재앙을 구제하고 나라의 원수를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상제께서 일일이 지시하여 도와주옵소서.”
천신이 이르되,
“너는 근심치 말라. 이 다음 자연 알 날이 있을 것이니 그 때 되거든 라비로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면 좋은 기회가 생기리라.”
하고 말을 마치매 별안간에 금광이 얼른하며 곧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대저 법국이 영국과 해마다 싸움을 쉬지 아니하므로 궁촌 농부라도 영국의 원수 됨을 다 아는지라. 약안이 어려서부터 부모의 항상 일컫는 말을 듣고 심중으로 또한 나라의 부끄럼을 씻고자 하여 날마다 상제께 가만히 축원하기를,
‘장래 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설치하고 백성을 구제하게 하옵소서.’
하여 칠팔 년을 일심으로 비는 고로 그 정성이 맺혀 하늘이 감동하여 약안의 눈에 천신이 나타나심이라. 약안이 황홀하여 마음속에 생각하되,
‘이것이 혹 꿈인가’
하더니 그 후에도 누차 천신이 눈에 완연히 보이고 이같이 부탁이 정령한지라. 약안이 생각하되,
‘천신께서 저렇게 누누이 분부하시니 필연 나라에 큰 난이 있을지니 내 마땅히 구하리라’ 하고 일로 부터 나라 원수 갚기를 스스로 책임 삼아 혹 군기도 전습하며 혹 목장에 나아가 말도 달리며 총과 활도 배우니 부모는 여아의 이러한 거동을 보고 심히 근심하며 염려하여 매양 금지하되 이미 뜻이 굳어 암만 권하여도 듣지 아니할 줄 짐작하고 어찌할 수 없어 그대로 두더라. 그 동리 사람은 모두 약안더러 미친 여자라 지목하되, 약안은 추호도 뜻을 변치 않고 동리 사람더러 이르되,
“내 이미 상제의 명을 받았노라.”
하매 듣는 이가 해연히 웃고 이상히 알더라.
오늘 문무재주를 배움은 정히 다른 때 국민의 난을 구제코자 함이로다.
_ 출처 : 위키문헌